[글마당] 달항아리
산을 넘어온다 달항아리 감나무에 까치밥 홍시 더 붉게 물들이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잡고 어머니의 허리 펼 때마다 치맛자락 털어내는 바람이 달을 띄운다 창호지에 알맞게 달이 들면 닭, 염소, 개 그리고 새들이 손가락으로 날고 어흥! 호랑이가 나타나면 제일 작은 손가락이 무섭다며 울음을 터트린다 실타래를 감던 어머니는 옛날이야기를 시작한다 (옛날 옛적에 한 마을에…) 실패의 배가 한 쪽으로만 불러올 때면 어머니의 고개도 따라 기울고 달항아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담아 하늘 더 멀리 올라간다 더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듯이 실타래의 꼬리가 줄어들 때 달은 창호지에 빛을 거두어들인다 (소경이 귀머거리가 되고 귀머거리가 소경이 될 때) 툭 연줄이 끊어진다 어머니는 옆으로 누워 잠이 들었다 이불에서 코골이들 부르는 노래 사이사이 번데기 장수가 장단을 치다 사라진다 산을 넘어온다 달항아리. 임의숙 / 시인·뉴저지글마당 달항아리 번데기 장수 까치밥 홍시 옛날 옛적